동시각의 상대성 – 그리고 인간의 상대성 이론
10월 6, 2009 · 댓글 남기기
동시각의 상대성이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의 바탕이 된 것으로, 어떤 두가지 현상이 같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이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상대적으로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인데 흔히 사용되는 예로 아래의 이야기가 있다.
기차가 역에서 멈추는 것을 보았을 때 내 시계가 7시 정각이 되었다. 하지만 기차는 멀리 있고, 시계는 가까이 있으니 기차에서 출발한 빛이 내게 오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이고, 내게 두 사건 (기차가 멈추는 일과 시계가 7시가 되는 일) 같은 시간에 관측이 되었다면 사실은 가차가 먼저 멈추고 시계가 7시가 된 것이라는 것이다. 즉 어떤 사람이 기차 안에서 내 시계를 보았다면 (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그 사람에게는 기차가 멈춘 후에 시계가 7시가 되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어떤 일이 같은 시간에 있어났다는 것은 관측자의 위치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이 동시각의 상대성이다.
(나는 물리학자가 아니다. 그냥 학교에서 배운것과 책에서 읽은 것으로 정리해 본 것이니 혹 틀린 부분이 있더라도 이해하시길…)
물론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사는 것이 다 이렇듯 관측자의 상황에 따라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과 상대가 보고 느끼는 것은 같은 사물, 같은 사건, 같은 말들을 보고 있는 것이라도 참 많이 다르지 않은가!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상대에게는 새로운 것인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것을 ‘인간의 상대성 이론’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동일사건의 상대성, 동일언어의 상대성 – 어쩌면 모든것이 상대적인 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아닐까? 무엇이가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고 우리는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조금 가다보면 서로가 공통분모라 믿었던 것들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아파하고, 그리고 또 새로운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것 아닐까? 함께이지만 결국은 혼자인 이 길, 어쩌면 외롭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착각속에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외로움이 또 새로운 관계의 다리를 이어나가고…
어쩌면 한심한 현실이언정, 이 속에 인생의 깊은 뜻이 숨어있으리라. 피하는 것이 방법이 아니고, 거스르는 것이 상책은 아니리라. 그 가운데서 모난것 깎이고, 다듬어지면 아름다운 모습이 되겠지. 그 눈물, 그 웃음 하나하나 농축되어 또 새로운 내가 만들어 지겠지. 어느 날엔가 내가 이 땅에 있는 이유 다 이룬 날, 웃으며 떠 날 수 있겠지.
이 흔들리는 상대성의 세상 속에 흔들리지 않는 것은 하나님 뿐이리라.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 1:17)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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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를 읽고
10월 6, 2009 · 댓글 남기기
민수기는 아주 지겨운 책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영어로는 Numbers 가 제목인 이 책은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여 기록한 내용이 두번 나오면서, 각 지파와 부족들의 이름과 자꾸 나오는 숫자들 때문에 지겨운 책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에 민수기를 읽으며 보니 그런 부분도 있지만, 또 발람의 이야기, 제사와 절기 이야기, 그리고 이스라엘의 초기 전쟁 이야기등 읽을 거리가 두루 있는 책인것 같다.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어리석음이었던것 같다.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그렇게 가까이 날마다 역사하시는 하나님, 오직 광야의 이스라엘 민족만 먹은 음식 만나, 영광 중 구름으로 성막에 임하시는 하나님,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 모세 얼굴의 광채… 이집트에서의 이적들을 빼놓고라도, 이렇듯 충분한 증거들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오히려 원망하며, 이집트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그럴때 마다 가해지는 하나님의 매, 그리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역시 기적은 신앙을 만들어 내지 못하는 모양이다. 믿음은 믿을 근거가 없을때 어쩌면 더 확실해 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광야에 있던 이스라엘인들이 받은 증거가, 기적이 충분하지 못했다면 더 무엇이 필요할까! 나에게 이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다시금 감사를 드린다.
이 말씀 때문에 여러번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민 9:17-18)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 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민 9:22-23)
내 삶 또한 이런 고백이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하고 기도드린다. 멈추기도 행진하기도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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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이가 아프단다
10월 5, 2009 · 댓글 남기기

지훈이가 아프단다.
종일 잠을 잔다…
아이가 아프면 아이는 물론 힘이 들겠지만, 엄마가 많이 힘들다.
우리 아이들이 아플때 아이들이 원망스럽고, 도움 안되는 내가 원망스러운 적이 참 많았는데…
아픈다는 것도, 아픔을 느낄 수 있다는 것도, 아프다가 낫는다는 것도 감사할 일이리라…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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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면 안다
10월 5, 2009 · 댓글 남기기
하이스쿨을 졸업할 즈음 되니까 학교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조금 알것 같고,
대학을 마칠 때 즈음에야 대학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다.
아이가 9살 5살이 된 지금도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의 진리를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것도 시간이 지나 나의 현재가 아닌 과거의 일이 될 그 때 즈음이면 좀 잘 알 수 있겠지.
그리고, 삶이란 이런 것이리라 깨달음이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삶을 마감해야 할 그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남들과 다를 것도 같을 것도 없는 이 길을 걸으며, 한 걸음 한 걸음 배우며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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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omputers 1 Me
9월 30, 2009 · 댓글 남기기
I have been using 2 computers at work for quite some time now. My set up consists of 1 PC with 2 monitors and a laptop machine. Having a second machine have given me following benefits:
- On my main machine, I run core development tools. I run other apps like Outlook and casual browsing material on the laptop.
- I have access to different version of browsers and apps at easy reach.
- When one machine grinds to a halt – for whatever reason – I have another machine to do what I need to do.
- I can take the laptop to a meeting if required with all the stuff that I need.
I use Synerge so I can use one keyboard and mouse to control both machines. While Synerge provides elementary level of clipboard sync, it sometimes just dies and this had been a great annoyance – until today. I use a clipboard manager called Ditto and today, I suddenly wondered if Ditto will sync the clipboard for me and hurah, it has sync feature which was quite easy to setup.
I enjoy this 3 screen, 2 machine setup a lot and would recommend it if you can afford it. After all, my laptop was a leftover at the office with Pentium M and 1Gb of mem only. But for what I use it for it is more than enough.
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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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를 읽고
9월 21, 2009 · 댓글 2개
욥기를 읽고
욥기 참 슬픈책이다. 그리고, 좀 지루한 책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입을 열면 참 오랫동안 이야기를 한다.
욥과 세 친구들, 그리고 나중에 등장한 엘리후 –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가장 큰 것은 ‘입을 다물자’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바로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말이 많으면 어찌 허물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등장 인물들은 모두 주옥과 같은 신앙의 진리를 말한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라’ (욥기 23:10)
이런 욥의 말들 이외에도 그 친구들과 엘리후의 말들속에 진주와 같은 신앙세계의 진리는 많이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을 어둡게 그리고 가치없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들이 하는 다른 말들이다.
더 많이 해석할 수록, 더 많이 알려고 하고, 표현 할 수록 진리는 외곡되어지고 있다.
나는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내 자신을 보았다. 아는 것은 표현을 해야하고, 가르치려고 드는 내 모습말이다.
가르치는 일에 은사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교만한 내 모습을 보았다는 것이다.
어떻게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나님의 의를 내 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인간으로는 불가능 하리라. 그리고 그렇기에 한계있는 내 입을 열어야 할 때가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 현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더 옳바른 내 모습이 되도록 노력해야지. 내 입의 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지.
이번에 욥기를 읽으며 인간의 부족함, 하나님의 무한하심, 그리고 거기 서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행복한 사람.
Three Types of People
9월 18, 2009 · 댓글 남기기
There are three types of people in this world:
those who make things happen,
those who watch things happen
and those who wonder what happened.
- Mary Kay Ash
세상에는 세가지 사람이 있다.
어떤 일을 일어나게 만드는 사람들,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다.
- 매리 캐이 애쉬
나는 어떤 사람일까?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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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깨물다
9월 16, 2009 · 댓글 남기기
어제 회사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배가 너무 고파서 김밥 말아 놓은 것을 두개 사서 먹으려다가 혀를 깨물었는데 참 세게도 깨물었나보다.
오늘 밤이 되도록 아직 아프다.
그래도 가만두면 낳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그리고 아직 혀가 붙어 있으니 또 감하사고,
혀를 마음대로 놀릴 수 없으니까 느끼는 불편함 때문에 평소에 잘 알지 못했던 혀의 중요성도 알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짧았지만, 여행 이후, 몸도 마음도 여유가 좀 없는 것 같다. 빨리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지…
행복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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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를 읽고
9월 15, 2009 · 댓글 2개
출애굽기를 읽고
애굽에서의 여정이 끝나고,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요셉을 모르는 왕이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시작한 것이다. 모세는 참 특별한 사람인 것 같다. 왕궁에서 교육을 받고, 광야에서 또 준비된 후에 80살이 되어서에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모세를 준비시키시는 일에 서두르지 않으신것 같다.
이런 모세도 자신을 믿지 못하고, 또 하나님을 믿지 못하여 아론의 도움을 받게 되고, 그렇게 그의 사역은 시작되었다. 어찌보면 좀 아쉬운 시작이다.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이지 않은가!
앞 부분이 하나님의 재앙을 통해 보여주신 강한 팔, 곧 능력의 하나님을 그리고 있다면 후반부는 섬세하시고 세밀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것 같다. 예전에는 재앙들을 통한 하나님의 심판이 많이 와닿았다면 이번에는 모세를 시내산에 부르셔서 대화하시고 함께 시간을 보내시며 성막과 그 내용물들을 가르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많이 느끼게 된것 같다.
물론 마음이 강팍해 져서는 하나님의 진노응 사기도 했지만, 끝내는 성막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않았는가. 재료를 너도나도 헌납하여서 재료가 남았던 모습. 모든 것이 하나님이 모세에게 지시하신대로 이루어진 일. 거룩하게 만드는 일. 그리고 처음 세워진 회막. 처음이기에 더욱 설레이고 아름다운 모습들이 참 좋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성막의 모습을 읽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그렇게까지 하여서 자신을 그 백성들에게 나타내 보이신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의 편지라는 말이 좀 추상적인 의미로 생각되었는데, 이번에 창세기 그리고 출애굽기를 읽으며 가까이 계시며, 함께 하시며, 이런 표현을 써도 좋을지 모르지만 노력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우리와 가까이 있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먼저 택하신 하나님. 우리에게 목숨을 거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 하다.
행복한 사람
